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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삶의 어려움은 누구 탓일까? 우리 자신일까? 제도, 구조 때문일까?

청년들은 어른들 조언이 답답하다고 말한다. 한국경제가 빠르게 성장하던 그때와 지금은 다른데, 청년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단지 청년들의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해서다. 우리 때는 더 어려웠다고 말하는 어른들을 청년들은 꼰대라고 부른다. 누구 말이 맞는걸까? 분명 사회 제도, 구조 문제가 있겠지만 청년들은 예전 보다 지금이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단정하여 말할 수 있는걸까?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성공한 사람들은 환경 탓 말고 노오오오오력을 하라고 말하는데 말이다.



청년들이 말하는 불만은 추상적으로 떠올리는, 막연한 '사람다운 삶'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부족하다는 의미다. 경제 수준이 높아질 수록 사람들이 생각하는 '사람다운 삶'의 기준치는 높아진다. 그 '사람다운 삶'은 명칭과 달리 생각 보다 소수가 누리는 삶이다. 그 소수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서 경쟁은 필연이다. 사회가 더 좋게 바뀔 수록 더 많은 이들이 공평한 출발선에서 경쟁을 시작하겠지만, 경쟁에는 개인의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다. 흙수저는 금수저를 보며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, 자신을 흙수저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진짜 흙수저가 아닐 수 있다. 우리 각자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은수저, 금수저일 수 있다. 모두가 완벽하게 공평한 출발선에서 경쟁을 시작할 수는 없다. 사회가 아무리 더 좋게 바뀌어도 덜 노력한 사람이 혜택을 더 누릴 수는 없다. 상대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.

사회의 불합리한 점에 불만을 갖고 소리를 내는 행동은 중요하다. 모든 사람이 불만을 말할 시간에 개인적인 노력에만 더 열중했다면 세상이 이만큼 좋아지지 않았을테니 말이다. 사회가 바뀌어서 누리게 될 이익은 자신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. 당장 내 개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려면 투덜거리기 보단 노력이 더 필요한 게 사실이다. 투덜거리는 것 보다 노력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. 더 고통스럽기 때문에 더 적은 이들만 노력한다.



사회구조 문제와 불만은 항상 있을 것이다. 완벽하게 이상적인 세상에 만들어지기 전 까진 항상 문제가 있을 것이고, 이상적인 세상은 앞으로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. 예를 들어, 한 반의 학생들에게 똑같은 수업과 교과서, 문제집을 제공하더라도 1등과 꼴등은 여전히 존재한다. 현재 우리 삶은 똑같은 교과서와 문제집을 주지 않는 상황이지만, 나 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은 상황이 어떻더라도 나 보다 더 노력한다. 나 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 훨씬 더 악조건에 처하지 않는 이상 나는 그 보다 높은 등수에 이를 수 없다. 누군가는 이런 설명에 반감을 가질 수 있다. 왜 누군가는 1등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꼴등을 해야 하냐고 말이다. 등수를 없앤다면 어떨까? 그런 이상을 가지고 실행했던 게 공산주의다. 실패했다. 사람은 자신이 꼴등이고 싶지 않은 것일뿐 등수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.